인간이 만든 물체 중 가장 멀리 있는 것은? – 보이저 1호 이야기
인류의 손에서 우주 끝으로 – 보이저 1호는 어떤 존재인가요?
1977년 9월, 미국 항공우주국 NASA는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담한 탐사선을 우주로 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저 1호(Voyager 1)입니다. ‘항해자’라는 뜻을 가진 이 탐사선은 처음부터 ‘가장 멀리’ 날아가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보이저 1호는 인간이 만든 물체 중 우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보이저 1호는 인류가 처음으로 태양계를 넘어 성간 우주(Interstellar space)로 진입한 탐사선이며, 아직도 지구와 교신 중입니다. 발사된 지 47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인간과 연결된 상태에서 우주의 깊은 어둠을 뚫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존재는 기술을 넘어선 하나의 상징적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대의 쌍둥이 탐사선, 그중 더 멀리 간 존재
많은 분들이 모르고 계시지만, 보이저 1호는 혼자가 아닙니다. 바로 보이저 2호라는 ‘쌍둥이 탐사선’이 함께 발사되었지요. 흥미롭게도 보이저 2호가 먼저, 1977년 8월에 출발했고 보이저 1호는 한 달 뒤 출발했지만, 보이저 1호가 더 빠른 궤도로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금세 앞질러 나갔습니다.
처음 보이저 시리즈의 주 임무는 목성과 토성 탐사였습니다. 당시는 두 행성이 나란히 가까운 위치에 있어, ‘행성 정렬’을 이용하면 중력 가속을 받아 더 적은 연료로 긴 거리까지 탐사할 수 있는 천재적인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이 ‘중력 도약(gravity assist)’ 기술은 보이저가 단순히 궤도에 머무르지 않고 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결정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생명을 담지 않은, 그러나 생명의 이야기를 품은
보이저 1호는 무인 탐사선입니다. 사람은 타고 있지 않지만, 인간의 기술, 상상력, 희망, 그리고 호기심이 응축되어 있는 존재이지요. 보이저 1호의 몸체는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크기는 약 3.7m 정도입니다. 태양광이 닿지 않는 곳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원은 플루토늄-238 기반의 RTG(방사성 동위원소 발전기)를 사용합니다. 이 발전기는 원자력의 열을 전기로 변환해 탐사선을 구동하는 방식으로, 지금도 보이저의 생명줄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기계 장치이지만, 보이저 1호는 인간이 만든 모든 기술의 ‘정수’라 할 만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금성처럼 밝지도 않고, 화성처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행성도 아니지만, 보이저 1호는 묵묵히, 그러나 끈질기게 ‘먼 길’을 가고 있는 중입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모습 아닐까요? 보이저 1호는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로 향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철학적 거울이기도 합니다.
태양계를 넘어선 여정 – 보이저 1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지구에서 출발한 보이저 1호는 이제 지구로부터 약 240억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수치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으며, 매초 약 17km씩 태양계 바깥을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엄청난 거리에서도 여전히 지구와 미약하게나마 교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보이저 1호는 2012년 8월, 드디어 태양의 입김이 미치는 한계 지점인 헬리오포즈(Heliopause)를 넘어섰습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간 우주에 진입한 탐사선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때부터 보이저 1호는 더 이상 태양계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 은하의 성간 공간을 유영하는 ‘외계 존재’가 된 셈입니다.
우주의 국경선, 헬리오포즈란 무엇인가요?
‘성간 우주에 진입했다’는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헬리오포즈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헬리오포즈는 태양풍이 닿는 마지막 경계로, 다시 말해 태양의 지배력이 닿는 가장 바깥쪽 테두리입니다. 이 너머는 더 이상 태양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우주 공간 자체의 밀도와 입자가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즉, 보이저 1호는 태양이라는 ‘어머니 품’을 완전히 벗어나, 우주 바다를 홀로 항해 중인 셈이지요. 헬리오포즈를 넘는 순간부터, 보이저 1호는 성간 입자, 자기장, 우주선 방사선 등 우리가 거의 경험하지 못한 데이터를 지구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이는 지구에서 만든 어떤 망원경으로도 관측할 수 없는 정보로, 보이저 1호는 말 그대로 우주의 척후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위치는 측정할 수 있지만, 방향은 잊히는 존재
보이저 1호는 현재 궁수자리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애 주기로는 보이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보다, ‘얼마나 멀리 도달했는가’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보이저 1호가 2030년 이후가 되면 전력을 잃게 되어, 지구와의 교신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입니다. 그 이후에도 탐사선은 우주 속을 관성에 따라 계속 떠다니게 되며, 약 4만 년 후에는 다른 별 근처를 지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먼 미래에 보이저 1호를 누군가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없을지 몰라도,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를 지적 생명체가 이 작은 탐사선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바로 지구라는 행성이 남긴 가장 오래된 유산이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항해 중인 시간의 기록자
보이저 1호의 여정은 단순한 거리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시간을 건너는 항해입니다. 우리가 보이저 1호에게 신호를 보내면, 약 22시간 후에야 그 신호가 도달하고, 보이저가 답을 보내도 다시 22시간이 걸려야 지구에 도착합니다. 이처럼 하루가 넘는 시간차를 견디며 이뤄지는 교신은, ‘지금’의 개념조차 우주에서는 상대적인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보이저 1호는 ‘가장 멀리 간 물체’라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인류가 우주에 남긴 발자국이자 지속 가능한 기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의 침묵을 뚫고 외로이, 그러나 끈질기게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45년을 날아도 꺼지지 않은 신호 – 어떻게 교신이 가능한가요?
지구에서 출발한 작은 탐사선이 40년이 넘도록 우주를 날아다니면서, 여전히 지구와 신호를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기술력’이라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보이저 1호와의 교신은 과학, 인내, 그리고 집요함이 결합된 인류의 집단적 성취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먼 거리에서도 어떻게 여전히 교신이 가능한 걸까요?
태양이 닿지 않는 공간, 전기는 어디서 올까요?
우선 가장 먼저 궁금해지는 것은 전력 문제입니다. 보이저 1호는 태양광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먼 공간에 있기 때문에, 태양광 패널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이저에는 RTG(Radioisotope Thermoelectric Generator), 즉 방사성 동위원소 전지라는 특수한 전력 장치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 장치는 플루토늄-238이라는 물질이 자연스럽게 붕괴하며 내는 열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냅니다. 처음 발사될 당시에는 약 470와트의 출력을 냈지만, 지금은 서서히 줄어 약 100와트 이하의 출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적은 전력을 아주 효율적으로 나눠 쓰기 위해, 보이저 1호는 해가 갈수록 일부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꺼가며 ‘생존 전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루 넘게 걸리는 신호, 그래도 멈추지 않는 대화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저 1호와 지구 사이에는 약 22시간 30분의 통신 지연이 존재합니다. 지구에서 보낸 전파가 탐사선에 도달하는 데만 22시간 이상, 다시 되돌아오는 데 또 같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 번의 메시지 주고받기에 하루 이상이 소요됩니다.
이러한 통신은 NASA의 심우주 통신망(Deep Space Network)이라는 전 세계 세 곳(미국 캘리포니아, 스페인 마드리드, 호주 캔버라)에 위치한 거대 안테나 시설에서 이루어집니다. 각각의 시설은 지구의 자전에 맞춰 돌아가며 보이저를 추적하고, 지구가 자전해도 끊기지 않도록 끊김 없는 접속을 유지합니다. 지름이 70미터에 달하는 거대 접시 안테나가, 먼 우주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매일같이 귀를 기울이고 있는 셈이지요.
소리는 없다, 오직 ‘데이터’만이 존재하는 대화
많은 분들이 “보이저가 보내는 사진이나 소리”를 상상하곤 하시지만, 사실 보이저 1호는 지금의 스마트폰보다 훨씬 단순한 구조입니다. 보이저의 컴퓨터 메모리는 약 68KB, 지금의 전자계산기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게다가 1990년 이후에는 카메라 시스템이 꺼진 상태여서, 이제는 이미지가 아니라 우주의 자기장, 입자 밀도, 전하 상태 등 물리적인 데이터만을 보내고 있습니다.
전파 신호도 아주 미약하여, 지구에 도달했을 때는 마치 한낮 도시 소음 속에서 낙엽 하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희미합니다. 하지만 NASA는 이 신호를 포착하고, 강화하고, 필터링하여 유의미한 데이터로 바꾸는 정밀한 기술력과 인내심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심장박동처럼, 살아 있다는 증거
보이저가 보내는 신호는 단지 ‘데이터’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 신호는 마치 아주 약하게 뛰는 심장박동처럼, “아직 살아 있습니다”라는 외침과도 같습니다. 매년 점점 줄어드는 전력, 닳아가는 부품, 느려지는 응답 속에서도 보이저는 지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교신은 단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인류가 외로움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능력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릅니다.
보이저 1호는 그 자체로 우주와 연결된 인간의 외로운 확성기입니다. 언제까지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그 신호를 놓치지 않는 한, 그 작은 탐사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인사를 실은 ‘황금 레코드’ – 외계 생명체에게 보내는 메시지
보이저 1호가 단지 과학 장비와 데이터만을 싣고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아주 특별하고도 시적인 물건이 하나 실려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이저 골든 레코드(Voyager Golden Record)’라 불리는, 황금 도금된 구리 디스크입니다. 지름 약 30cm의 이 LP 판은 음악 앨범이 아니라, 지구에 사는 생명체가 우주에 보내는 인사이자 자기소개서입니다.
이 작은 디스크에는 수많은 언어, 소리, 음악, 이미지, 과학적 기호 등이 압축되어 있으며, 보이저 1호가 인류의 손길을 떠나 성간 우주로 항해하는 동안 누군가 만난다면, 이 레코드가 지구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실은 앨범
황금 레코드에는 총 55개 언어로 인사말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에는 고대 수메르어, 라틴어, 고대 중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된 인사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라는 짧은 문장이지만, 이 한마디는 마치 고요한 우주를 향한 지구인의 수줍은 첫인사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지구의 다양한 자연 소리—천둥소리, 파도, 새소리, 심지어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까지—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 이전에, 지구라는 행성의 호흡과 리듬을 전달하고 싶었던 의도가 엿보입니다.
음악은 우주의 언어일 수 있을까?
보이저 레코드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음악입니다.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수집된 전통 음악, 고전음악, 민요, 그리고 20세기 팝 음악까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는데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부터 인도 라가, 아프리카 드럼 연주까지 담겨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비틀즈의 곡도 포함하려 했지만, 저작권 문제로 무산되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 대신, 우주에 보낸 최초의 대중음악은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한 재즈로 채워졌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예술을 우주로 실어 보내려는 시도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야말로 보편적인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외계인이 이것을 발견한다면?
물론 황금 레코드를 외계 생명체가 발견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 기록을 남겼습니다. 발견 가능성이 아니라, 기록의 가치 자체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황금 레코드에는 LP 판을 재생하는 방법도 담겨 있습니다. 그림문자와 수학적 기호를 이용해, 어떻게 바늘을 올리고 회전시키는지를 설명했지요. 심지어 지구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도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이는 마치 어릴 적 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던, 순수한 꿈과도 같은 시도였습니다.
어떤 과학자는 이를 두고 “우주로 던진 병 속의 편지”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느끼며 살아왔는지를 알리기 위해, 언젠가 누군가가 발견해주기를 바라며 보낸 편지입니다.
인간은 기록하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보이저 1호는 결국 인류라는 존재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하나의 시도입니다. 황금 레코드는 과학 기술의 산물인 동시에, 철학적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보이저가 항해를 멈춘다 해도, 이 작은 레코드는 수백만 년 동안 우주 공간을 떠돌 수 있습니다. 혹여 먼 훗날, 지구가 사라지더라도 이 디스크가 발견된다면, 우리는 단 한 마디라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말을 걸었다.”